2023년 여름, 불가리아의 작은 도시인 반스코에서 제20회 국제 언어학 올림피아드(이하 IOL)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저는 반스코에 모인 2백여 명의 IOL 참가자들 중 한 명인 정원준이라고 하며, 후일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도전할 의향이 있는 모든 학생들을 위해 이 참가 수기를 남겨보려고 합니다.
처음 언어학을 접한 것은 IOL로부터 1년 전, 단순히 아랍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친구가 부러워서였습니다. 몇 달 후, 언어학에 재미를 붙인 저는 지인을 통해 언어학 올림피아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다시 몇 달 후에는 KLO에 응시하기 위해 모니터 앞에서 필기구를 들고 앉아 있었습니다.
KLO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호기롭게 APLO에 도전한 저는 10등이라는 아쉬운 성적 앞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제게 추가 합류의 기회가 찾아왔고, 그렇게 저는 한국 대표팀의 일원이 되어 반스코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저는 대표팀 내 꼴찌의 APLO 성적으로 어떻게 타국의 쟁쟁한 참가자들과 경쟁할 것인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지만, 반스코에서 열흘을 보내고 대표팀 친구들과 점차 친해지며 IOL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라 화합에 있다는 점을 강력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스코로 가는 길에 경유했던 이스탄불 공항에서 만난 홍콩 팀과 몰도바 팀, 대회 기간 동안 친하게 지냈던 콜롬비아 팀과 이스라엘 팀, 그 외에도 이번 IOL을 빛낸 수많은 참가자들과 친교를 나눈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꿈 많은 청소년들이 언어학이라는 주제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열흘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2백여 명의 참가자들이 “IOL 2023” 모양으로 대열을 이루어 드론으로 사진을 찍었던 개막식 날, 대표팀 친구들과 늦은 밤까지 단체전 문제 풀이를 연습했던 날, 모두가 하나되어 저녁 축제를 즐겼던 마지막 날이 기억에 남습니다. 더불어 개막식 전에 들른 베즈보그 호수에서 머금은 상쾌한 공기와 개인전 다음 날 들른 릴라 수도원의 화려한 전경 그리고 별이 비치는 반스코의 밤하늘에서 조교님들과 찾았던 별자리들까지, 모든 것이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올해 저는 아쉽게도 개인전 및 단체전에서 메달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개인전에서는 자신있는 의미론 문제가 출제되지 않았을 뿐더러 제가 취약한 유형인 문장 번역 문제만 3문제가 출제되었고, 시간 부족에 쫓기다 나머지 문제들도 아깝게 끝내고 말았습니다. 다만 IOL을 준비하고 또 참가하며 알게 된 모든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쌓은 언어학적 소양 및 IOL에서 만든 기억들은 메달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과정은 앞선 참가자 분들의 수기가 말해 주듯 다양한 분야에 도움이 될 것이며, 이 수기를 읽는 여러분도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언젠가 참가해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하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첫 참가임에도 대표팀의 자리에까지 올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사람들, 대회 기간 동안 함께한 대표팀 전원과 조교님 두 분, 심사위원 분들, 자원봉사자 분들, 귀빈으로 참석해 주신 반스코 주지사님과 불가리아 교육부 장관님을 포함해 제가 IOL에서 즐거운 경험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럼 브라질리아에서 열릴 다음 IOL에서는 메달을 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기대와 함께 이만 조촐한 참가 수기를 마치겠습니다.
2023년 10월 1일
작성 | 정원준
– _____ 재학
– IOL 2023 Bansko 국가대표
– APLO 2022 _____, KLO 2023/24 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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