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불가리아의 반스코에서 개최된 2023 국제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한 서울과학고 2학년 이규화라고 합니다. IOL에서 제가 겪었던, 또 느꼈던 것들을 이 수기에 담아 공유합니다.

언어학 올림피아드의 존재는 유튜브 향문천 채널 등을 통해 그 이전부터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언어학 올림피아드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고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작년이었습니다. 친한 학교 선배가 추천해 준 것이 계기였는데, 단순히 ‘퍼즐 같고 재밌으니까’ 시작했던 그 언어학 올림피아드가 지난 한 해 동안 제게 가장 특별하고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가능케 해 주었습니다.

불가리아 반스코에서 보낸 일주일은 정말이지 꿈만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국가대표들과 팀 리더 분들, 운영자나 출제자 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개성 넘치고 한 나라를 대표할 자격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생각을 나누고, 함께 웃고, 추억을 쌓아갔습니다. 불가리아에서 다른 나라 참가자들과 만든 수많은 기억들을 하나하나 풀어내고 싶지만, 그때의 기억들 말고도 수기에 이야기할 것은 많으니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하나만 간단히 적겠습니다.

IOL에 참가하기 몇 주 전, 다른 대한민국 국가대표 분이 저와 이야기하다 번데기를 챙겨가면 재밌을 것 같다는 말을 지나가듯이 했습니다. 번데기 이야기를 처음 꺼낸 그 국가대표 분에겐 농담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는 번데기라는 아이디어가 다른 나라 참가자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선사하기 위한 완벽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번데기를 몇 캔 챙겨갔고, 대회 개최 전 오리엔테이션 날 점심시간에 일본 대표팀과 브라질 대표팀 앞에서 한 캔을 따고 말았습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지요. 서로서로 새로운 시도를 권유해 보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바퀴벌레도 아니고 이게 뭐냐는 말부터,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는 말까지 다양한 리뷰들을 주더군요. 팀전 전날 저녁에도 한 번 더 까려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생각으로만 남겨 두었습니다. 그렇게 남은 번데기는 제가 간식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필이면 가장 먼저 떠오른 이야기가 국경을 초월하여 언어학에 대한 관심을 공유한 이야기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 갈리기로 유명한 음식을 외국 분들에게 먹이려고 시도한 이야기인 게 맞나 싶지만 그만큼 언어학 올림피아드를 딱딱하지 않은,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대회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번데기 소동 말고도 IOL에서 쌓은 소중한 추억들이 많지만, 역시 그 중심에 있었던 IOL 참가자 분들, 또 팀 리더 분들, 출제자 및 운영자 분들 등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갈 수는 없겠습니다. 한국어의 언어학적 특징들을 줄줄이 꿰고 있어 우리나라 국가대표들까지 놀라게 한 홍콩의 Henry, 제가 에스페란토 공부를 조금만 더 했다면 더 친해질 수 있었을 에스페란티스토 분들- 러시아의 Artjom, 스위스의 Luca, 에스토니아의 Orlando, 번데기에 당하시고도 만날 때마다 friend라고 정겹게 불러 주시던 브라질 팀 리더 분, APLO 합동 트레이닝 때 온라인으로 인사 나눈 연을 잊지 않아 도착한 날 밤에 저를 만나겠다고 호텔까지 찾아와 준 우크라이나의 Denys와 다른 우크라이나 대표팀 구성원들, 음악 취향이 비슷해서 아직까지도 종종 연락해서 노래 추천해주는 일본의 Ryusei, 그리고 공항에서부터 함께하며 가장 많은 추억을 쌓은 우리나라 대표팀까지. 맘만 같아선 그곳에서 만난 이들을 한 분 한 분 전부 이야기하고 싶지만 글을 한도 끝도 늘릴 순 없어 이만 줄여야겠네요. 언급한 분들 말고도 참 좋았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수기를 쓰다 보니 새삼스레 그들이 그리워집니다. 내년 브라질리아에서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APLO에서 0.5점 차로 8위를 놓쳤다가 다른 참가자 분의 IOL 참가 포기 선택으로 추가 합격하는 등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란 이름을 달고 다른 나라로 향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꿈도 꾸지 않았던 성과와 함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감사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아직까지도 스스로의 실력으로 국가대표가 된 것이 아닌 것 같아 조금 떳떳하지 못한데, 오히려 그렇기에 남은 1번의 기회, 2024년 브라질리아로 향하는 기회에는 더욱 열심히 임해서 더욱 좋은 성적으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3년 10월 1일
작성 | 이규화
– _____ 재학
– IOL 2023 Bansko 국가대표
– APLO 2022 _____, KLO 2023/24 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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