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IOL 2023에 출전한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 2학년 소원현입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국어 문법을 배우며 언어학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저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인공 언어나 문자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한글 자음을 보며 예사소리와 거센소리, 된소리 간의 관계를 탐구하다 우연히 음운론의 영역에 발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언어를 ‘덕질’하면서 다른 ‘덕후’들과 인터넷으로 언어학에 대한 여러 정보를 나누다가 언어학 올림피아드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저와 언어학 올림피아드 사이의 첫 접촉점이었습니다.

언어학 올림피아드를 알게 된 뒤 KLO 홈페이지에 올라온 언어학 올림피아드의 연습 문제를 풀어보았습니다. 고급 문제 몇 개는 풀이에 손도 못 댄 채로 꼼짝없이 답을 봐야 했지만, 그럼에도 기출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사그라들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어나 영어와는 너무나도 다른 여러 언어의 생소한 문법, 음운, 의미, 그리고 단어들이 저를 강하게 매료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언어학에 관심이 생기게 된 것은 물론,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중학교 3학년 때에는 개인적 사정 때문에 올림피아드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KLO가 꽤 늦게 치러진 덕에 올림피아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금상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제가 기출 문제를 열심히 풀어본 덕도 있겠지만, 첫 참가에서 이렇게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이 상당히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KLO 수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통신 교육을 받고 새 학년을 시작했습니다. APLO는 KLO와 다르게 답안에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했는데, 통신 교육에서 여러 번 연습 문제를 풀고 조교분들에게 답변을 첨삭 받은 것이 논리적 답안 작성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천운으로 APLO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대한민국 대표가 되었음을 확인하던 날 남몰래 독서실에서 조용한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 한편에는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의 대표로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IOL 기출 문항을 꼼꼼히 분석하는 것은 물론, 겨울 방학 때 실시한 통신 교육의 내용을 복기하며 언어학에 대한 심화 학습을 통해 IOL에 대한 만반의 대비를 다졌습니다.

7월 21일 금요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그 전날 싸놓은 짐을 끌고 잠결에 인천공항까지 갈 때의 분위기는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싸늘한 새벽 공기 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앞으로의 일정을 함께 소화하게 될 동료들을 만나 타국에서 같이 대회를 치른다는 점에 대해 부푼 기대감과 긴장감이 더 컸을 것입니다. 집결 시간인 아침 7시에 인천공항의 카운터 근처에 모여 계시던 조교와 참가자분들을 만났을 때의 기분은 그래서 특히 더 각별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다행히도 다들 언어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그런지 쉽게 말을 트고 친해졌습니다.

인천에서 이스탄불을 거쳐 소피아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타서 대회 개최지인 반스코까지 가는 고된 일정이어서 호텔에 새벽 2시에 도착했지만, 머릿속은 다음 날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대회가 바로 시작되지는 않았고 그 전에 반스코 관광 일정이 있었습니다. 반스코의 산을 오르다 뜨거운 자외선에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타기도 하고,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이스라엘 등 여러 국가의 대표팀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저희가 묵는 호텔 근처의 공원에서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과 단체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회 첫날, 개회식 날이었습니다. 개회식이 열리는 강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여러 나라에서 온 팀원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언어학 올림피아드’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회식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간 뒤에는 팀원들이 같이 모여서 서로가 출제한 개인전 문제를 풀어보기도 하고, 이번 개인전에는 무엇이 나올지 예측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대망의 개인전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번 개인전 문제에서는 특히 미지의 언어로 된 문장과 그 번역문을 주고 규칙을 찾는 로제타 스톤 유형의 문제가 많이 나왔습니다. 출전 전에도 충분히 많이 연습해 본 유형이지만, 그래도 문제를 빠르게 확인하며 어떤 문제부터 풀지 전략을 세웠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제였던 5번 수사 문제는 A4 용지 반도 안 되는 짧은 분량에 수사가 5개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처음 문제를 보았을 때는 꽤 당황했지만, 문제 풀이 전략을 꼼꼼하게 세운 덕분에 문제를 효율적으로 풀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팀전은 개인전 이틀 뒤에 열렸습니다. 팀전이 열리기 전날 저희 조의 팀원들과 함께 작년 중세 만주어 문제를 풀어보았기에 대비는 어느 정도 된 상태였지만, 그래도 다들 작년 팀전 대한민국 팀이 금메달을 딴 점을 떠올리며 어느 정도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 팀전 문제 언어로는 호주의 무린-파타어가 나왔는데, 오스트레일리아 언어의 특징답게 동사 형태론이 상당히 복잡해서 분석에 애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쉽게도 저희 soym팀은 수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namk 팀에서 장려상을 받아 만족스러웠습니다.

개인전 날과 팀전 날의 사이에는 문화 교류의 날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릴라 수도원이라는 곳에 갔는데, 수도원 벽면에 그려진 벽화에 쓰인 글자를 보고 그것이 무슨 문자일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개인전과 팀전이 끝나고 난 날의 저녁에는 자유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호텔 로비에 모여서 다른 국가의 참가자들과 보드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정 중간에 광장에서 민족문화 축제가 열려서 이를 관람하러 나가기도 하고, 곳곳마다 있는 기념품점에서 다양한 기념품을 사거나 팀원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불가리아의 매점에 군것질거리 쇼핑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기념품은 서점에서 구매한 ‘어린 왕자’ 불가리아어판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대회가 끝나고 마침내 폐회식 날, 개회식이 진행되었던 바로 그 강당에 앉아 떨면서 기다리던 기억이 납니다. 장려상부터 발표한 뒤 동메달, 은메달, 금메달 순으로 발표하는 방식이었는데, 동메달을 전부 부르고 은메달, 심지어 금메달 목록을 부르는 중에도 제 이름이 불리지 않아서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첫 출전인데 이 정도면 잘한 것이라고 체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가 금메달을 수상한 데다가, 전체 3위로 호명된 것을 인지했을 때는 제가 어떻게 단상 위로 올라갔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무아지경이었습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폐회식을 지켜보시던 부모님도 이 부분에서 하필 인터넷 문제로 영상이 끊겨서 결국 제가 단상에 올라가는 장면은 현장에 있던 분들만이 기억하게 되었겠네요. 강당을 나서며 불가리아의 따스한 오후 햇살을 받았을 때의 짜릿한 기분은 아직도 생각납니다.

폐회식 이후에도 저희는 조금 더 자유 시간을 보내다가 호텔 근처 공원에서 모든 참가자가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을 가지고 해산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피아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한편으로는 홀가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가리아를 떠나게 되어 아쉬웠습니다. 동시에 대회 장소에서는 잊고 있었던 한국에서의 여러 학업 고민 역시 다시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무어라 해도, 이번 방학에서 가장 값진 일주일을 꼽으라면 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이번 언어학 올림피아드가 진행된 일주일을 고를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개인전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장려상 1개, 그리고 팀전에서 장려상 1개라는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우수한 성과를 거두게 된 데에는 팀원 여러분 개개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저희를 물심양면 지원해 주신 부모님들, 저희를 현지에서 잘 지도해 주신 조교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 참가자들 사이의 단합력과 시너지가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 봅니다. 언어학 올림피아드에, 또는 언어학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이 수기를 읽고 계신다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평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언어학 올림피아드의 참가를 권해 드리는 바입니다. 세계 각국의 여러 청소년과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며 논리력과 사고력을 함양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지만 분명 그만큼 값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열정을 언제나 응원합니다.

2023년 10월 1일
작성 | 소원현
– _____ 재학
– IOL 2023 Bansko 국가대표
– APLO 2022 _____, KLO 2023/24 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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